열 다섯살 성우의 꿈
지난 해 12월 디트로이트 한인 연합감리교회에서 열렸던 크리스마스 클래식 음악회의 청중석에는 특별히 긴장하며 공연을 감상하는 소년이 앉아 있었다. 소년은 특히 차인홍 교수의 바이올린 연주 때 모든 신경을 청각에 집중하여 한 마디의 음도 놓지지 않으려는 듯 음악 속에 빠져들고 있었다. 미치 꿈속을 거닐 듯 소년은 차인홍 교수같은 명 연주자가 되어 청중 앞에 서서 연주하는 꿈을 꾸기도 했다.
차인홍 교수는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좌절을 딛고 당당히 음악가로서 성공을 하여 미국 주립대학의 교수가 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2살 때 소아마비를 앓고 난 이후 서서 걸어본 적이 없는 차 교수의 성공담은 장애를 안고 있는 이들에게는 희망이며 꿈이기도 했다.
그날 차 교수의 공연을 경청했던 소년은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아니 거의 보이지 않는다. 시각장애 1등급부터 9등급까지의 분류 중 2등급으로 중증 장애에 해당된다. 그 소년이 바로 파밍턴에 있는 해리슨 고등학교 9학년에 재학 중인 15살 윤성우 군이다. 성우는 태어날 때 사고로 짐작되는 안구진탕으로 인해 선천성 시각 장애를 안고 태어났다. 이는 현대의학에서조차 의학적 병명이 없을 정도로 희귀한 질병에 속한다. 시야가 극히 제한적이며 그나마 희미하게 음영만이 구분 될 뿐이다. 성우는 한국에서 태어나 성장하였으며 2년전 미국에 오기 전까지 시각 장애학교에 다녔다. 그곳에서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음악을 시작했다. 앞이 보이질 않아 다른 아이들과 함께 마음껏 뛰어 놀 수 없는 성우는 바이올린을 시작하면서 음악 속에 파뭍혀 지냈다. 선천적으로 장애를 안고 태어났든 질병 혹은 사고로 인해 장애가 되었든 장애를 갖고 있는 자녀를 둔 부모는 속이 타들어간다, 자녀에 대한 사랑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성우가 음악에 재능을 보이기 시작하자 부모는 장애인들을 위한 편의 시설과 교육환경이 훨씬 우수한 미국행을 결심하게 된다.
음악을 하는 이들에게 시각 장애는 치명적이다. 악보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전적으로 청각에 의지하며 듣고 연습하기를 반복하는 피나는 노력을 한다. 한국의 맹인 가수 이용복 씨가 어려서 기타를 치다가 손에 땀을 닦아달라고 한 순간 그의 어머니는 가슴이 찢어졌다고 한다. 손이 온통 피범벅이 되어있었기 때문이었다. 성우는 비록 학교 수업시간에 쓰는 특수한 장비를 이용하면 희미하게나마 악보를 한 마디씩 볼 수 있기도 하지만 정작 연주할 때는 모든 것을 암기한 후 기억을 해가면서 연주해야 한다. 남들보다 수십배의 노력과 시간이 필요할 수 밖에 없다. 최근까지 노는 시간이 없을 만큼 바쁜 생활을 해 온 성우는 매일 학교 생활과 함께 연습을 하느라고 온 몸이 파김치가 되곤 했다. 그러면서도 연주를 할 때 악보를 볼 수 없어서 가끔씩 뜻대로 연주가 되지 않을 때는 속이 무척 상한다고 한다.
성우는 음악가로서의 꿈을 갖고 있다. “어려운 건 잘 알지만 열심히 노력해서 줄리어드 음대에 진학하고 싶어요” 라고 말할 때는 제법 의젓하기도 했다. 성우는 사라 장과 정경화 같은 음악가를 존경한다고 말하면서 수즙은 듯 웃음을 띄기도 했다. 명 연주자가 되기위해 피나는 노력을 하면서 한 걸음씩 다가가고 있는 가운데서도 성우의 연주를 들으면 그 느낌은 사뭇 다르다. 지난 해 한인회 송년의 밤 행사에서 성우의 특별 연주를 듣고 난 후 허철 총영사는 너무 감동적이며 연주 속에서 마음의 평화를 느꼈다고 했다.
지난 3월 20일 파밍턴 힐에 위치한 루터란 교회에서 열린 음악제에서 성우의 연주를 감상한 청중들은 성우의 선율에 매료되어 공연장이 떠나갈 둣 갈채를 보냈다. 이날 특히 회장 취임 후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는 김영종 한인회장은 성우의 연주회 소식을 접하고는 부인 김선희 여사와 함께 공연장을 찾아 성우 군을 격려하고 금일봉을 전하기도 했다.
성우는 현재 디트로이트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단원으로 활약하고 있기도 하다. 성우와 인터뷰를 하는 날도 파밍턴 힐에서의 공연이 끝나고 바로 디트로이트 피셔 극장으로 이동하여 공연을 해야 했다. 웅장한 무대위에 100여명의 단원 중 유일한 시각 장애인으로서 성우는 맨 앞줄에 앉아 다른 단원들과 함께 수 많은 청중 앞에서 공연을 펼쳤다. 연주가 끝나고 청중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기립박수를 보내는 것도 성우에게는 보이지 않는다. 그냥 끊이지 않는 박수 소리에 공연이 성공적으로 끝나게 되었음에 안도할 뿐이다.
성우의 연주 때면 늘 그림자 처럼 따라 다니는 이들이 있다. 어머니 이혜정 씨와 동생 성호 군이다. 이혜정 씨는 성우가 움직일 때마다 온 신경을 곤두 세우며 노심초사 한다. 혹시라도 발을 헛딛거나 물체에 발이 걸려 넘어질까봐 잠시도 눈을 떼지 못한다.
성호도 형의 열렬한 팬이다. 성호는 형이 참 자랑스럽다고 말한다. 이혜정 씨는 “성우가 다섯살 때 세살 짜리 동생을 앞이 보이지 않으면서도 자기가 지켜줘야 한다며 두 팔로 앉고 미끄럼을 타는 걸 보고 가슴이 뭉클했다”고 한다.그 얘기를 들으며 자란 성호는 “이제 제가 형을 지켜줘야죠.”라고 제법 어른스럽게 말한다. 성호는 훤칠한 키에 태권도가 3단이다. 가족의 따뜻한 사랑과 성원으로 성우에게는 더 이상 장애는 아무런 장애가 아니다. 성우의 마음 속에는 가족의 사랑과 희생이 자신을 지켜주고 있음을 늘 품고 있다. 그래서 성우는 웃음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가장 하고싶은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성우는 웃으며 대답한다.
“햇살이 드는 도서관 창가에 앉아 책을 읽고 싶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