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시간에 큰 별이 졌다. 모두의 가슴 속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채 우리의 영웅 고 남상용 장로는 하늘의 부름을 받았다. 지난 3월 30일 오후 5시 17분 경 사랑하는 유족들이 임종을 지키는 가운데 고 남상용 장로가 영원한 안식을 위해 유명을 달리했다. 지난 해 6월 말기위암 판정을 받고 투병생활을 해온 남 장로는 이후 병세가 호전되어 회복 기미를 보이는 등 건강을 되찾는 듯 하면서 지난 1월 자서전 출판기념회를 열기도 하고 출석 교회의 청년부 강연을 하고 앤아버 한인회의 삼일절 기념식에 참가하는 등 활동을 하며 2월 말까지도 정상적인 식사를 하는 비교적 건강한 생활을 해왔다. 그러다가 갑자기 식욕을 잃고 통증을 호소하며 구토증세를 보임에 따라 병원에 입원 후 안정을 취하기도 했으나 다시금 병세가 악화되더니 한달 여를 넘기지 못하고 끝내 77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하였다.
31일 장례식장에서 조문객을 맞은 유족들은 사랑하는 남 장로를 가슴에 묻고 지난 시간을 회상하며 슬픔에 젖었다. 맏며느리 지나 씨는 “아버님은 늘 본인보다 가족생각을 먼저 하신 분이었다”며 울음을 터뜨렸다. 가족들이 마음 아파할까봐 병마와 싸우면서도 아픈 내색을 하지않은 분이었다고 말하며 “늘 남을 배려하는 습관이 몸에 배인 분이었고 특히 한국의 정신과 한국 문화를 누구보다도 사랑했던 분이었다”고 울먹였다. 둘째 며느리 지연 씨는 “아버님은 나를 딸처럼 대해주신 자상하시고, 부드럽고, 사랑스런 분이었으며 늘 당신보다 자식들의 건강을 먼저 챙기셨다”고 말하며 흐느꼈다.
4월 1일 앤아버 외곽에 위치한 NIE 장례식장에는 400여명의 조객들이 고인의 마지막 길을 함께했다. 조객들은 장례예배 내내 남 장로가 안치된 케스킷을 바라보며 이날이 만우절이니 거짓말 처럼 남 장로가 일어나 다시금 호탕한 모습으로 우리 앞에 서주기를 바라며 마음 아파했다. 장례예배를 인도한 앤아버 한인교회의 손경구 목사는 남 장로와의 일화를 소개하면서 “남 장로님은 저와 함께 캘빈대학을 방문하면서 운전석 옆에 앉아 잠시도 쉬지않고 말씀을 하셨다”고 하고 “목사보다도 더 말씀을 더 많이 하신 분”이라고 하자 조문객들이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이어 잠시 말을 멈춘 손 목사는 “이젠 그러한 남 장로님의 말씀을 더 이상 들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벌써부터 남 장로님이 생각나기 시작하고 그리워집니다. 남 장로님이 안계신 미시간이 앞으로 어떤 모습이 될 지 답답하고 안타깝기만 합니다.”라고 말하자 식장이 순간 숙연해졌다.
전날 조문에 이어 장례식에 참석한 김영종 디트로이트 한인회장은 “오늘 우리는 미시간에서 참 귀하고 소중한 분을 떠나보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분의 정신 만큼은 우리들 가슴속에 영원히 함께하실 것입니다.”라고 말하며 “남 장로님께서 생전에 쌓아놓으신 귀한 업적을 결코 헛되이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하고 고인의 유지를 계승할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남 장로가 처음 말기암 판정을 받고 시한부 삶의 선고를 받았을 때 모든 눈물을 다 쏟은 탓인 지 유족들은 차분하면서도 담담했다. 유족들은 가족회의를 통해 남 장로가 추진해 온 한국학 지원 및 장학 사업 등을 계속 추진하기로 결정하고 장남 앤디 씨가 일을 주도적으로 진행할 것임을 전했다. 또한 20년 된 슬리퍼를 계속 사용할 정도록 검소한 생활을 해 온 고인의 정신을 잇고자 유족들은 화환과 조의금을 받지않기로 했다. 이날 장례식에는 김득렬 원로목사와 전만기 미시간 교회협의회장, 훈영 합굿 미시간 상원의원, 테리 맥도날드 미시간대학 인문대학장 등이 참석하였고 차인홍 교수가 고인을 위한 연주를 했으며 우희창 영사는 허철 주시카고총영사를 대신해 조문을 하기도 했다. 고인과의 작별을 아쉬워하는 많은 조문객들은 장례예배에 이어 아버크레스트 파크에 마련된 장지로 이동한 후 하관예배를 마칠 때까지 함께 했다. 그렇게 해서 남 장로는 우리 곁을 떠났다. 장지에는 하늘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할 정도로 환한 햇살이 비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