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어가는 가을 밤과 함께 김종대 디트로이트 한인회 이사장의 고민이 깊어만 갔다. 그동안 결코 적지않은 금전과 시간, 노력을 들여 미시간 한인 사회를 위해 봉사해왔고 디트로이트 한인회 역사의 산 증인임을 자부해왔으며 그 부분에 대해서 만큼은 어느 누구에게도 당당히 얘기할 수 있을 정도로 자긍심도 갖고 있는 그였다. 단지 장로라는 교회의 직함과 김득렬 장로교회 원로목사의 아들로서의 주위의 시선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얻은 것 중 일정 부분은 지역 사회를 위해 헌신하겠다는 사명이 오히려 그에게 봉사하는 기쁨과 보람을 가져다 주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특정인이 본분을 망각한 체 자신의 이익을 취하기 위해 한인회와 같은 공익단체를 이용하려다 뜻대로 되지 않자 분란을 조성하고 허위 날조로 선동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인간이 얼마나 간교하고 사악해질 수 있는 지 도무지 가늠이 되질 않았다. 자신의 위선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 한 나머지 악수를 거듭하며 허둥대는 모습이 때론 애초로워 보이기도 했다. 진실만큼 강한 것이 무엇이 있다고 그것을 덮으려 얄팍한 술수를 쓰는 모습을 지켜보며 혀를 찼다. 많은 미시간 한인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사업을 시작한 젊은이가 어느 순간 탐욕의 늪에 빠져 차츰 이성을 잃어가며 나락으로 떨어지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 또한 여간 고역이 아니다. 김 이사장은 애증이 교차함을 느꼈다. 그는 한인회를 어느 개인의 전유물 처럼 착각하고 자신의 뜻대로 움직여 보려고 한 행위는 당연히 비난받아야 마땅하지만 우리 미시간 한인 사회가 결국 그런 어처구니 없는 인물을 만들어냈다는 것으로부터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고 말한다. 좀더 관심을 갖고 애정으로 한인회에 참여했더라면 젊은 친구가 그렇게 까지 심하게 망가지지는 않았을 거라고 안타까워 한다. 사업 망할 각오로 싸우겠다며 들이대는 모습에서 눈과 귀를 막고 막장으로 달겨드는 악귀의 모습이 연상되기도 했다.
지난 89년도 제 19대 조규홍 회장의 부탁으로 한인회 회계업무를 시작으로 봉사를 시작한 이래 부회장을 거쳐 21대 회장으로 선출되면서 열정적으로 봉사해왔던 일들이 주마등 처럼 스쳐 지나간다. 91년도 겨울 상공인협회(회장 김찬도)와 함께 Korean American Share Day를 만들어 TOGETHER WE CAN! 이라는 모토를 내걸고 디트로이트의 1,120가정에 터키와 함께 의류, 장갑, 캔푸드 등을 일일이 포장하여 전달했던 일은 지금도 생각만 하면 가슴 뭉클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날 행사를 위해 디트로이트 한인 천주교회를 비롯한 한인 종교 단체가 모두 참여하였고 세탁인협희 등의 각 단체들은 물론 미시간에 거주하는 많은 동포들이 너나 할 것없이 팔을 걷어붙였다. 거기에다 그 자신이 몸담고 있던 United Community Housing Coalition과 Neighborhood Social Services, Michigan Legal Services, 웨인카운티 사회복지센터, 디트로이트 시 등 미국 공공 기관이 적극적으로 후원을 하여 2개월에 걸친 준비과정을 거친 끝에 12월 6일 오전 11시 많은 한인들과 디트로이트 시장을 비롯한 미국 공공기관 관계자들 그리고 디트로이트 주민들이 운집한 가운데 디트로이트 다운타운의 그랜드 서커스 파크에서 감동의 드라마를 연출하게 되었다. 상공인협회 김찬도 회장과 세탁인협회 조규화 회장, 각 단체의 임원들, 그리고 각 교회에서 보내 준 성금과 개인들의 참여로 이루어진 한인들의 정성은 디트로이트 주민들은 물론 관계자들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하고도 남았다. 당시 개인적으로 5,000달러를 흔쾌히 쾌척한 신동호 박사나 많은 양의 의류를 보내 준 홍철현 사장은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하며 감사한 마음을 잊지않고 있다. 그날의 행사를 통해 미시간 지역에서 한미 합동행사의 새로운 장을 열기도 했다. 비록 부침을 거듭해오긴 했지만 그 때의 맥이 오늘날 까지도 이어지는 것은 여간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그러한 행사를 놓고 논공행상을 따지며 급기야 그로인해 서로간에 불신과 반목이 생겨난 것을 보고 피가 거꾸로 솟는 심정이었다. 더우기 김 이사장 자신이 그런 현장을 목격한 뒤로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도움을 주고 봉사를 한 것이 남에게 인정받고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이미 진정성을 잃은 것이다. 남을 돕고 선행을 배푸는 것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그렇다고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에 오른 손이 한 일을 왼손이 알리는데 쓴다면 그것은 단지 개인의 입신양명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에 불과하다.
김 이사장은 94년 12월 미시간 한인 거주 역사를 발간하면서 미시간의 이민 선배들이 이루 말할 수 없는 고생을 하며 이루어 놓은 것을 지금까지 지켜 온 것은 원칙과 신의였음을 굳게 믿고 있다. 그동안 한인회는 물론 문화회관을 설립하여 한인 사회에 기여한 이들은 이러한 원칙을 지켜오며 노블레스 오블리쥬를 몸소 실천해 온 미시간 한인 사회의 버팀목이었다. 그들은 지금도 후배들이 관심을 갖고 참여해 주길 기다리며 기꺼이 바통을 넘겨주려고 하고 있다. 이들을 폄훼하려는 시도는 결코 명분이 없다. 언론에 사진 내고 이름 석자 내주는 것을 대단한 힘인 양 내세우며 혹세무민하는 어리석은 사람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끌려다닐 수밖에 없었다고 항변한다면 너무 궁색하다. 입으로 정의를 외치며 돌아서서 불의와 타협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아왔다. 원칙을 무시하고 자신의 존재 근거까지 부정하는 우를 범하며 떼를 쓰다가 결국 실족하고 만 어느 한인회장의 모습은 우리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시사한다. 변칙과 술수는 결코 성공할 수 없음을 알리는 메시지를 전하기위한 효과적인 방법을 찾는 김 이사장의 고민은 깊어가는 가을 밤 만큼이나 이래 저래 깊어만 간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