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호 회장의 사임으로 긴급 임시이사회를 소집한 이종효 이사장은 “여러 차례 철회 의사를 타진했지만 본인의 의지가 확고하여 사퇴를 수리할 수 밖에 없음”을 밝히고 이사회의 의결을 요청했다. 이사회는 결국 김 회장의 사퇴를 수리키로 의결하였지만 당장 차기 회장 선거를 치루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이미 수 대째 입후보자가 나서질 않아서 이사회의 추대로 총회 인준을 통해 선출해 왔기에 결국 또다시 새로운 후보를 추대하여 임시총회를 통한 인준 절차를 밟아야 할 수 밖에 없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당시 마땅히 추천할 인물이 없다는 데에 이사회의 고민이 있었다. 따라서 이사회는 한인회 업무의 공백을 막기위해 임원들에게 직무대행을 맡아 줄 것을 요청키로 하였다. 이종효 이사장은 먼저 조미희 부회장에게 본인의 의사를 알아보았지만 조 부회장은 받아들이기가 어려움을 밝혔다. 더구나 당시 국외 여행 중이었던 조 부회장에게는 더 이상 부탁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결국 김종현 부회장에게 요청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김 부회장 역시 개인 사정을 들어 고사의 뜻을 분명히 했다. 마음이 급해진 이 이사장은 다시금 김종현 부회장을 설득하기로 하고 김병준, 김종대 이사들과 함께 김 부회장 자택으로 찾아 갔다. 한참을 설득 끝에 김 부회장으로부터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만 한시적으로 직무대행을 맡겠다는 수락을 받아냈다. 김 부회장의 수락의사를 확인한 후 이 이사장은 임시 이사회를 소집하여 김 부회장을 직무대행으로 인준하였다. 김 대행은 이사회로부터 광복절 행사 이후 보궐선거를 통해 차기 회장 선거를 치룰 것이라는 말을 듣고 적어도 그때까지는 최선을 다해서 한인회 업무를 수행할 것을 약속했다. 이로써 김영호 회장의 사임 후 이사회의 신속한 후속 조치로 김종현 직무대행 체제 구성을 마무리 함으로써 한인회 업무의 공백을 최소한으로 막을 수 있게 되었다. 4월 25일 열린 임시이사회에 이어 5월 2일 정기이사회를 통해 모든 절차가 2주 남짓 걸렸을 뿐이었다. 이는 당시 재적 이사가 11명 뿐이었던 점도 신속한 처리에 한 몫 거든 셈이었다.
직무대행을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 소식이 전해졌다. 김 대행은 미시간 지역 동포들을 위해 문화회관과 함께 미주 지역에서 처음으로 문화회관에 빈소를 차리고 조문객을 맞았다. 당시 빈소 설치 소식을 들은 황연행 전 회장이 달려와 김 직무대행의 두 손을 잡고는 “마음속의 감사함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고 하며 “사실 오늘 시카고에 가서 조문을 하려고 했는데 한인회에서 빈소를 설치했다는 소식을 듣고 만사 제쳐놓고 달려 왔다”고 말을 이어갔다. 황 씨는 “이번 한인회야말로 역대 한인회 중에서 가장 위대한 한인회라고 자신있게 말 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황 씨는 수 개월 뒤 모 주간지에 수 차례에 걸쳐 한인회를 폄하하는 글을 게재하는 등 위선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한인회에서 마련한 빈소에 찾아와 한인회를 극찬하는 말을 하더니 불과 수 개월 뒤 정확한 사실 여부도 확인 않은 채 낯뜨거운 추잡한 글을 연이어 게재하여 파문을 일으킨 것이다. 결국 역대 한인회장들이 회동을 하여 황 씨를 불러다 자중할 것을 요청하는 등 망신을 당하고 나서야 더 이상의 물의를 일으키는 행위를 자제할 것을 약속했지만 파장이 적지 않았다.
김종현 직무대행은 황규천 사무총장을 비롯한 임원들과 함께 광복절 행사를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체육회 등의 주요 단체는 물론 인적 네트웍을 총동원하여 행사를 위한 기금 마련과 준비에 모든 것을 걸다시피 했다. 김 대행에게 광복절 행사는 숙명같은 것이었다. 경제가 어렵고 사정이 열악할 수록 우리 민족이 한데 모여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는 자리야말로 위기를 헤쳐나갈 수 있는 초석이 될 것이라고 굳게 믿었던 것이다. 또한 연중 가장 많은 인원이 참석하는 광복절 행사는 2세들에게 정체성을 심어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기회라고 생각했다.
모 주간지의 대표는 김 대행의 인준 직후부터 공언한대로 한인회의 발목을 잡기 시작했다. 광복절 행사 시행여부에 대한 여론 조사를 실시한다는 명목으로 자신의 주간지에 연속해서 행사 개최에 대한 부정적인 부분을 부각시키려고 하였다. 이는 미시간 한인 사회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미시간 한인들은 그에대해 관심조차 갖지 않았다. 일부 교포는 광복절행사 개최 여부를 묻는 여론조사를 하겠다는 의도 자체가 불순한 생각에서 비롯되었다며 이를 신랄히 비판하기도 했다. 결과에 대한 언급없이 유야무야 끝나긴 했지만 힘을 결집시켜도 모자랄 판에 불필요한 곳에 정력을 낭비했다는 비난을 면키 어려웠다.
2009년도 광복절 행사는 그 어느 때보다도 성대하게 개최되었다. 1,000여명의 동포들이 참가한 가운데 제64주년 광복절 기념식과 체육대회가 다채롭게 펼쳐졌으며 체육회를 비롯한 돌파축구회 등의 단체들은 일찍부터 행사장에 도착하여 행사준비에 팔을 걷어부쳤다. 단체들과 각 교회에서 지원한 자원봉사자들도 속속 도착하여 분주하게 행사준비에 힘을 보태기도 했다. 한인회에서는 점심 시간이 되어 행사준비를 마칠 무렵부터 행사장 입구에서 동포들에게 일일이 태극기와 기념 수건을 나누어 주며 광복절의 의미를 되새기기도 했다. 태극기를 받아 든 사람들은 태극기를 보는 순간 하나같이 가슴이 뭉클하였으며 뜨거운 동포애를 느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날 광복절 행사가 치루어지는 자리 한쪽에서 이사회는 사전에 공고한 대로 임시이사회를 열고 10월 정기총회 직전 한인회장 보궐선거를 실시하기로 의결하였다. 이를 지켜보던 한 임원은 어렵게 행사를 치루고 있는 한인회가 이사회로부터 팽 당한 기분이라고 서운함을 나타내며 반발기도 했다. (다음호에 계속….)
김종현 직무대행은 황규천 사무총장을 비롯한 임원들과 함께 광복절 행사를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체육회 등의 주요 단체는 물론 인적 네트웍을 총동원하여 행사를 위한 기금 마련과 준비에 모든 것을 걸다시피 했다. 김 대행에게 광복절 행사는 숙명같은 것이었다. 경제가 어렵고 사정이 열악할 수록 우리 민족이 한데 모여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는 자리야말로 위기를 헤쳐나갈 수 있는 초석이 될 것이라고 굳게 믿었던 것이다. 또한 연중 가장 많은 인원이 참석하는 광복절 행사는 2세들에게 정체성을 심어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기회라고 생각했다.
모 주간지의 대표는 김 대행의 인준 직후부터 공언한대로 한인회의 발목을 잡기 시작했다. 광복절 행사 시행여부에 대한 여론 조사를 실시한다는 명목으로 자신의 주간지에 연속해서 행사 개최에 대한 부정적인 부분을 부각시키려고 하였다. 이는 미시간 한인 사회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미시간 한인들은 그에대해 관심조차 갖지 않았다. 일부 교포는 광복절행사 개최 여부를 묻는 여론조사를 하겠다는 의도 자체가 불순한 생각에서 비롯되었다며 이를 신랄히 비판하기도 했다. 결과에 대한 언급없이 유야무야 끝나긴 했지만 힘을 결집시켜도 모자랄 판에 불필요한 곳에 정력을 낭비했다는 비난을 면키 어려웠다.
2009년도 광복절 행사는 그 어느 때보다도 성대하게 개최되었다. 1,000여명의 동포들이 참가한 가운데 제64주년 광복절 기념식과 체육대회가 다채롭게 펼쳐졌으며 체육회를 비롯한 돌파축구회 등의 단체들은 일찍부터 행사장에 도착하여 행사준비에 팔을 걷어부쳤다. 단체들과 각 교회에서 지원한 자원봉사자들도 속속 도착하여 분주하게 행사준비에 힘을 보태기도 했다. 한인회에서는 점심 시간이 되어 행사준비를 마칠 무렵부터 행사장 입구에서 동포들에게 일일이 태극기와 기념 수건을 나누어 주며 광복절의 의미를 되새기기도 했다. 태극기를 받아 든 사람들은 태극기를 보는 순간 하나같이 가슴이 뭉클하였으며 뜨거운 동포애를 느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날 광복절 행사가 치루어지는 자리 한쪽에서 이사회는 사전에 공고한 대로 임시이사회를 열고 10월 정기총회 직전 한인회장 보궐선거를 실시하기로 의결하였다. 이를 지켜보던 한 임원은 어렵게 행사를 치루고 있는 한인회가 이사회로부터 팽 당한 기분이라고 서운함을 나타내며 반발기도 했다. (다음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