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미시간이 창간 10주년을 맞았다고 한다. 주간지를 창간하여 동분서주하던 모습을 본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열개 星霜이 흘러간 것이다. 모든 것을 떠나 축하해주고 싶다. 사업을 시작하여 10년을 지속한다는 것이 결코 녹록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나 지난 10년은 911을 시작으로 핵폭발에 버금가는 대형 경제 참사가 연이어 터지면서 사업을 하는 이들에겐 기억하고도 싶지 않을 만큼 최악의 상황의 연속이었다. 그런 가운데서 신규 사업을 시작해 10년 동안 지속해왔다는 것은 남다른 각고의 노력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김택용 씨 본인의 글에서도 밝혔듯이 사업을 시작할 때 주위의 만류가 있었다고 한다. 얼마 되지않는 시장에 신규업체로 참여한다는 것이 무모했지만 사명감을 갖고 시작했다고도 했다. 당시에는 정식으로 기자 수업을 받아 본 적이 없는 상태에서 언론사를 만든다는 것은 무모하다 못해 어리석기 까지 했을 것이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 나름대로 자리를 잡아 다음 10년을 위한 도약을 준비한다고 하니 대견하기만 하다.
權不十年, 花無十日紅 이라고 한다. 아무리 대단한 권력도 10년을 넘기지 못하며아름다운 꽃도 열흘을 가지 못한다는 뜻이다. 물론 시간 개념을 그대로 적용하라는 의미는 아니지만 많은 공감이 가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동안 이룬 것에 자아도취 되면 심각한 나르시시즘에 빠지게 되어 좀처럼 헤어나오기 어려워진다.
비록 전문적인 배경없이 시작했을 지라도 십년의 세월이 흘렀으니 이젠 어느 정도 내공이 쌓였을 것이다. 언론의 의미와 사명을 좀은 깨우쳤을 법도 하다. 공정성이야말로 목숨보다 소중하게 여겨야 할 첫째 덕목임을 새삼 깨닫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점에서 본다면 불행하게도 주간 미시간은 식물인간 상태나 다름 없다. 본인과 개인적으로 감정의 앙금이 남아있는 사람이 한인회장이 되었다고 해서 기사를 다루지 않겠다고 공언하고 다닌 것은 언론인이 되고자 하는 본인의 목표와는 정반대의 길을 걷고 만 것이다. 31대 한인회 기간 2년동안 관련 기사 한 줄 없이 오직 사실 호도와 폄훼로 일관했다는 것은 온갖 변명과 구실을 늘어놓아도 결코 합리화 될 수 없다. 진정한 언론은 사실을 알리는 것을 최우선 순위에 놓아야 한다. 판단은 독자에게 맡겨야 하는 것이다. 독자의 생각까지도 자신의 뜻에 따르도록 유도하거나 강요하는 것은 오만과 독선이다. 만에 하나 경쟁사들의 쇄락을 틈타 언론을 독점하여 여론을 주도하겠다는 생각이었다면 위험천만하다. 그동안 사실의 왜곡은 말할 것도 없고 불공정하고 편파적인 보도로 인해 많은 미시간 한인들이 혼란스러워하고 고통을 받아왔다. 언론인이 되고싶어하는 사람이 어떻게 독자들을 아군 적군으로 나눌 생각을 하는 지 기가막힐 뿐이다. 칭찬해주면 아군이고 쓴소리 하면 적군이라는 발상을 하는 사람의 뇌구조가 궁금하게 여겨질 뿐이다.
미시간의 많은 한인들은 사업 초기의 성실하고 겸손하며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을 보고 격려와 성원을 아끼지 않았다. 미시간에도 번듯한 한인 언론사가 하나쯤 생길 거라는 기대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기대에 부응하는 듯 성장하는 모습을 기쁜 마음으로 지켜보기도 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시작할 때의 모습은 하나 둘씩 자취를 감추더니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절해가는 것을 보고 실망하기 시작한다. 남의 얘기를 듣기 보다는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기 시작하며 쓴 소리 보다는 칭찬만을 들으려 하는 모습과 자신과 다른 견해를 갖고 있는 이들을 호도하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배신감을 느끼기도 했다. 언론을 하면서 가장 경계해야 할 개인적 감정들을 여과없이 그대로 자신의 주간지에 나타내면서 한때 미시간 한인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다시피 했던 주간지를 스스로 잡기장으로 전락시키고 만 것이다. 언론사는 그래서 작은 기사를 한가지 낼 때에도 만에 하나 생길 수 있는 오보를 막기위해 데스크의 검증 절차를 거치게 된다. 이러한 최소한의 장치 없이 혼자서 글을 쓰고 편집하고 인쇄하여 배달해야 함은 물론 영업까지 해야하는 형편이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가장 중요한 업무 시스템이 뒤엉켜버리고 만 것이다.
유명인이나 거물급 정치인들을 만나고 하는 일들이 본인에게는 대단한 자랑거리며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겠지만 바라보는 이들에게는 별 관심을 끌 만한 일이 못된다. 그들과 몇마디 말을 나누고 사진을 찍은 것을 통해 신분상승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착시현상일 뿐이다. 스스로의 위상을 그들에게 맞추어 대중으로부터 인정받으리라 생각하는 것은 유아기적인 발상을 벗어나지 못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몇 년전 한국의 정동영 민주당 의원이 대선에 실패하고 미국으로 연수를 왔을 때 미시간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이때 수행 역할을 하고 가까이 지낸 인연으로 호형호제 하기로 했다며 친분을 자랑삼아 얘기했지만 한국을 방문했던 이에 의하면 정 의원의 측근에게 김택용 씨의 소개로 정 의원을 만나 인사를 하고 싶다고 하자 “소규모 한인들이 모여사는 곳에 주 1회 발행하는 주간지 사장을 어떻게 다 기억하겠느냐?”며 오히려 “그가 누구냐?”고 반문했다고 한다.
스스로 쳐놓은 陣에 갇혀 허둥대는 모습이 너무 안스러워 보인다. 부디 回光返照가 일어나길 간절한 마음으로 빌고 싶다. 약이 쓰다고 피하다 보면 병은 점점 더 깊어만 간다. 아직도 약을 건네주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그리 절망적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선택은 오직 본인에게 달려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