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시간 미용재료협회는 지난 달 28일 트로이에 소재한 신라에서 총회를 열고 차기 회장에 김주환 전 협회 총무이사를 선출하였다. 미시간광장은 12월 5일 김 신임회장(이하 김 회장)과 동 장소에서 인터뷰를 갖고 향후 협회의 주요 업무계획 등을 들었다. 편집부 일행에 앞서 도착해 자리를 잡고 있던 김 회장에게서 웬지 무거운 분위기가 풍겨왔다. 최근의 업계 안팎으로 맞고있는 현안들에 대한 고심의 흔적이 역력했으며 인터뷰를 위한 질문에 앞서 그가 먼저 업계상황을 설명했다. 그만큼 심각하고 절실한 문제임을 알 수 있었다. “그동안 우리 한인들에 의해 구축된 동종 업계가 한두 사람에 의해 자칫 붕괴될 위험에 처해 있는 상황입니다.” 최근의 잇따른 털이범들에 의한 업소피해는 오히려 나중 문제라고까지 이야기 한다. “이대로 계속된다면 결국 살아남는 업소는 아주 소수일 뿐이며 자칫 이미 타주에서 시작한대로 타민족 사업자들에게 상권을 고스란히 내어주는 결과가 올 지도 모릅니다.” 이 문제에 대해선 동종 업계에 종사하고 있는 연제흥 한인회 부회장도 똑같은 생각을 갖고 있으며 우려의 목소리를 내었다. 연 부회장은 “제살깎기식의 경쟁은 결국 공멸을 초래할 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막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 회장은 그에대한 해결방안을 모색해 보았느냐는 질문에 자신의 소신을 피력하였다. “물론 쉽지는 않지만 해결책은 있습니다. 관건은 동 업계에 종사하는 분들이 얼마나 호응을 하느냐 입니다. 나름대로 여러가지 방안을 강구하고 있으며 회장 임기 기간 중 최선을 다해 볼 생각입니다.” 그에 의하면 지금 업계가 안고있는 문제는 외부에 알려 진 것보다 훨씬 심각한 상태라고 한다. “5~6년 전만 해도 과열 경쟁으로 인한 위기를 겪고있는 업소는 한 두개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10여군데 이상이 한계상황을 맞고 있습니다.” 사실 이러한 문제는 수 년전부터 이미 예견된 일이기도 했다. 20여년 전 손에 꼽을 정도의 업소수가 현재 메트로 디트로이트에는 200여개가 영업 중이라고 한다. 게다가 계속되는 경기침체로 디트로이트 인구가 감소하는 추세이니 이미 공급이 수요를 훨씬 초과한 셈이다. 그로인해 일부 업소의 생존을 위한 가격인하는 마진폭이 줄어들며 종국에는 적자경영을 감수하기까지 하는 것이다. 무분별한 가격 경쟁은 이미 통제불능 상태라는 것이다. “그 분들이 처한 상황을 이해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한 것은 내가 가격을 내리면 타 업소에서도 가격을 내릴 수밖에 없으니 서로 이익만 줄어들고 궁극적으로 경영상태만 악화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뿐입니다.” 김 회장은 이러한 문제는 특정 브랜드를 독점공급하고 있는 도매상들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한다. “전체 업계를 살리기 위해선 가격을 교란시키는 일부 업소에 대해서는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눈앞의 이익을 위해 외면하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서로가 최소한의 상도의만이라도 지켜준다면 비록 어렵더라도 우리 민족 특유의 인내와 성실성은 이를 충분히 극복해 낼 수 있다고 믿습니다.” 김 회장은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그 어느 때보다도 회원사들의 단합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회원사들이 협회를 믿고 힘을 실어준다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습니다. “ 그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 문제점을 해결하기위한 시도를 했지만 별 성과를 거두지 못했던 이유가 시작은 함께 했지만 지속적이 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밝힌 김 회장은 “회장 혼자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함께 희생을 나누며 단합된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김 회장은 회원사들의 단합을 재차 강조하며 최근의 잇단 피해에 대해서도 말을 이었다. “개별 업소 나름의 사정은 있겠지만 피해사실을 협회에 정확히 알리는 것이 경찰의 관심을 촉구할 수 있고 더 이상의 피해를 막을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니 반드시 신고를 해야 합니다.” 내년부터 임기가 시작되는 김 회장은 함께 협회를 끌어갈 임원으로 부회장 2명과 사무총장, 재무, 홍보, 여성, 회원관리 등을 인선할 계획이며 젊은 층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2000년도에 도미한 김 회장은 미국에 오기 전 전경련의 홍보팀에서 7년을 일했으며 그 후 개인사업을 통해 많은 돈을 벌기도 했다. 소위 잘 나가는 사업을 뒤로하고 미국행을 택한데에는 친 누이의 권유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가족들이 한데 모여 지내길 원했던 누이의 부탁을 들어 준 것이었다. 김 회장은 롸체스터에 거주하며 부인과 사이에 2남 1녀의 자녀를 두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