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유신헌법이 제정된 지 40주년이 되는 해이다. 유신헌법은 1972년 개헌을 통해 3공화국에서 4공화국으로 국가 체제가 바뀌는 역사적 사건이자 우리 근대사에 요동을 쳤던 시절임을 대변하기도 한다. 서슬퍼런 유신체제하에서 대통령의 권한은 절대적이 되었고 특히 언론, 보도, 방송 등은 반드시 사전 검열을 받아야 하는 등 철저하게 통제되었다. 자연히 정부에 비판적인 내용을 다루는 것은 근본적으로 차단될 수 밖에 없었다. 그러한 가운데 일부 기자들이 중심이 된 언론인들은 더 이상의 억압을 참지 못하고 언론자유의 외침을 대중에게 분출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당시 동아일보 기자들이 반정부 시위내용 등을 보도하며 언론 자유를 표방한 것이다. 이에대해 정부는 직접적인 제재 대신 주요 광고주들을 대상으로 동아일보 및 동아방송에 대한 광고 철회 압력을 행사하였다. 이로인해 동아일보 일부 면의 하단이 백지로 나가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게 되었다. 이른바 동아 광고탄압 사건이었다. 처음엔 일부 면이 백지로 나간 신문을 받아 든 독자들은 인쇄사고가 아닌가 하고 어리둥절했지만 광고주들의 광고 철회가 점점 늘어나면서 백지면이 많아지게 된 것을 보고서야 뭔가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당시 김인호 광고국장은 빈 면에 호소문을 게재하며 부고를 내듯 검은 띠를 두르기도 했다. 그 후 독자들의 격려와 성원을 알리는 광고 성금이 접수되기 시작했고 성금 기탁자의 이름을 게재함으로써 언론탄압에 대한 민중의 잠재되어있던 저항을 보여주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결국 동아일보측에서 정부에 비판적인 기자와 직원들을 해고함으로써 7개월여만에 해제되긴 했지만 동아일보는 한때 경영악화로 존폐위기까지 거론될 정도였으며 당사자들과 이를 응원했던 이들의 아픔은 고스란히 남게 되었다. 차후에 당시의 동아일보 해직 기자들과 재야인사들이 힘을 모아 국민들의 성금을 기반으로 탄생한 신문이 바로 한겨레 신문이었다.
동아일보 광고 탄압사건 이후 정부의 더욱 엄해진 언론 통제 속에 진실은 다시금 감추어지게 되었고 정권에 길들여진 주요 언론은 정부의 눈치를 살피며 그들의 입맛에 맞는 내용만을 보도하기 시작했으며 국민은 정부에 의해 사전 검열을 거친 내용만을 뉴스로 접할 수 밖에 없었다. 바로 이 시기를 전후해서 정확히 언제 누가 시작했는지 모르지만 겉표지에 “르뽀따쥬(불어로 현지탐방기사라는 뜻)”라는 이름으로 좀은 조잡한 인쇄물이 은밀히 손에 손을 거치며 퍼져나갔다. 서울대학교의 운동권 학생들이 제작했다고 알려지기도 했지만 그것을 돌려읽는 이들에게는 그건 별 문제가 아니었다. 단지 진실을 대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사법기관에 의한 체포의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짜릿함마저 느끼며 비밀리에 돌려 읽곤 했다. 의식이 있는 대학생들을 비롯한 지성인들에게는 암암리에 꼭 입수해서 읽어야 하는 필독 유인물이 되었다. 지금은 고시대 유물이 되었지만 가리방이라는 철판에 등사용지를 놓고 철필로 긁어써서 등사기로 한장씩 밀어낸 후 제본을 한 상태로 되는대로 몇 부씩 만들었기에 겉모습은 초라하기 그지 없었다. 정보기관과 정부당국에서는 이를 불온문서로 규정하고 이의 제작 및 배포에 관련된 이들을 불순분자로 몰아가는 등 동 인쇄물의 확산을 막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진실이 알려지는 것만큼 곤혹스러운 것이 없었던 것이다. 각 기업과 대학은 물론 심지어 고등학교에 까지 학생들로 하여금 동 유인물을 읽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하라는 압력을 가하였다. 불편한 진실이 알려지는 것을 어떻게 해서든 차단하려고 하였다. 정부의 눈치를 살피는 소위 어용언론들은 르뽀따쥬에 나온 내용들이 진실임을 알면서도 생존을 위해 왜곡하고 호도하기에 급급할 수 밖에 없었다. 어느 누구도 제2의 동아일보가 되고자 감히 나서지 못했다. 그러한 가운데 국민들은 차라리 진실을 의식적으로 피하는 것이 당시를 살아가는 생활의 지혜가 되다시피 했다. 언제부터인지 진실이 이기는 것이 아니라 이기는 자가 진실이 되고 정의가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승리한 자가 정의가 되어버린 현실에 익숙해졌다. 진실의 힘이 왜곡과 날조라는 거대한 성벽을 허물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제아무리 철옹성같은 벽을 쌓아도 결국은 진실이라는 힘 앞에서는 무너지게 마련이다. 낙숫물이 바위를 뚫는다고 한다. 미시간 저널은 겉모습은 초라하지만 진실을 전하기 위해 탄생했다. 더 이상 진실이 특정인의 이익을 위해 위장되는 것을 용인할 수 없기에 어렵게 탄생하게 되었다. 그리고 회를 거듭할 수록 미시간 동포들이 보내 준 뜻밖의 뜨거운 호응과 성원에 책임감으로 그 역할을 다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