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밝았지만 모두가 학수고대하는 희망의 사인은 아직 보이지 않는 것 같아 답답하기만 하다. 과연 디트로이트에 봄은 오는가? 이제나 저제나 경기회복을 기다려 온 지가 몇 년 째인지도 모른다. 이젠 차라리 기다린다기 보다는 더 이상 특별히 할 일도 없기에 그냥 세월만 죽이고 있는 형국이다. 자동차 산업의 중심지이며 한 때 미국의 7대 도시에 들기도 했던 디트로이트의 영화는 끝내 재현되지 않고 이대로 역사 속으로 묻히고 마는가?
미시간 광장에서는 짚더미에서 잃어버린 바늘을 찾는 심정으로 희망의 사인을 찾아 디트로이트로 향했다. 다운타운에 일이 있을 때마다 무심코 지나 오던 길이었지만 관심을 갖고 주위를 살피며 지나치자 느낌이 사뭇 달랐다. 매서운 겨울 날씨 속에 황폐화된 도시를 들어서자 공포감이 엄습했다. 모두가 떠나고 어린 아이 키만큼 자란 잡초더미 위로 눈이 쌓인 가운데 더 이상 집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하게 폐허가 되어 버린 주택들을 바라보니 갑자기 멍한 느낌이 들었다. 을씨년스러운 날씨 탓에 더욱 삭막하기만 했다. 도대체가 희망을 찾으려 한다는 자체가 부질없는 짓으로만 여겨졌다. 디트로이트 중심부에서 부채꼴로 펼쳐지는 주요 도로 중 하나인 그랜드 리버를 따라 북서쪽으로 이동을 하자 군데 군데 한인 업소들임을 짐작케 하는 간판들이 눈에 띄었다. 미용재료 업소와 의류 업소들이 그나마 상권을 형성하며 드믄드믄 트래픽을 이끌어가고 있는 편이었다. 좀처럼 희망의 사인을 찾지 못한 체 계속 이동을 하다가 그린필드에 이르러 머리위로 구름다리가 가로 질러 있는 것이 보였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지만 주요 도로를 가로질러 건물을 서로 연결해 주었던 것으로 한 때 꽤나 번성했던 지역이었음을 짐작케 하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건물 뒷쪽의 파킹장에 차를 세우고 건물 안을 기웃거렸다. 건물 주위에 여러 한인 업소들이 밀집되어있는 것으로 보아 그런대로 상권을 형성하고 있는 듯 하였다. 건물 안은 여느 몰처럼 각종 시설이 갖추어져 있었지만 사람들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지금은 멈추어 서 있는 상태지만 에스컬레이터까지 갖추고 있는 것으로 보아 제법 잘 나가던 쇼핑 몰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몇몇 업소가 오픈 사인을 내걸고 영업을 하고 있었다. 건물 경비인 듯한 이에게 매니져를 만날 수 있겠느냐고 물어보았다. 이유를 묻기에 리테일 비즈니스에 관심이 있다고 둘러댔다. 경비가 전화로 누군가를 찾는 듯 하더니 잠시 후 정장을 말쑥하게 차려입은 중년의 흑인이 한껏 밝은 표정을 지으며 다가왔다. 자신을 쟌 크로머 라고 소개를 했다. 악수를 주고 받고는 그는 이층에 있는 자신의 사무실로 안내했다. 사무실에 들어서자 책상위를 비롯하여 장식용 선반 등 여러 곳에 놓여있는 사진들이 눈에 띄었다. 그런데 그와 함께 촬영을 한 사진 속 주인공들이 너무 뜻밖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을 비롯 빌 클린턴 전 대통령, 그리고 TV에서 보았던 유명 여배우 등, 처음엔 과시하기위해 사진을 합성해놓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를 눈치챘는지 크로머 씨는 사진을 설명해주었다. 그러면서 자신의 전력을 말하는 순간 귀를 의심하였다. 갑자기 콧등이 시큰하며 온 몸이 전율하였다. 그토록 갈망하던 뭔가를 찾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에게 신분을 밝히고 찾아 온 목적을 말하자 그는 흔쾌히 인터뷰에 응해주었다.
크로머 씨는 어린 시절엔 큰 문제없이 성장을 하였지만 18세가 되면서부터 탈선의 길을 걷는다. 마약에 손을 대고 상점에서 물건을 훔치는 등 문제아가 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24세 때에 백화점에서 운동화 한 켤레를 훔친 것으로 인해 결국 13년 동안 감옥 생활을 하게 된다. 감옥 생활을 얘기할 때에 갑자기 표정이 굳어졌다. 그곳은 지옥이었다고 했다. 다른 수감자들은 그를 더 큰 범죄 조직에 끌어들이기위해 끊임없이 회유와 폭행을 했다. 고통을 이기지못해 결국 그들의 갱단 조직에 가입할 의사를 밝히자 담배를 주며 피우라고 했다. 그런데 불을 붙이려는 순간 알 수 없는 어떤 힘에 의해 불을 들고있는 손이 내쳐지면서 불을 떨어뜨리게 되고 갑자기 어떤 음성이 들렸다고 한다. 담배를 내려놓으라는 음성이 들려 그대로 했고 이상하게 그 자리에 있던 갱단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신을 보내주었다고 했다. 그것을 하나님의 음성이었다고 믿은 크로머 씨는 이후 성경을 읽으며 하나님을 만났고 다른 재소자들을 전도하기 시작했다. 하나님이 자신에게 부여한 두번 째 기회를 잃지않기위해 부단히 노력을 하기도 했다. 감옥에서 나왔을 때 그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제일 먼저 그가 시작한 일은 방황하는 청소년들이 자신과 같은 길을 걷지 않도록 교육하고 전도하는 일이었다. 그는 스스로 멘토가 되어 53명의 청소년들에게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고 있다. 어느 곳이든 아이들을 모아놓고 자신이 걸어온 길을 들려주며 방황하고 탈선하지 않도록 설득하며 스스로를 위해 기도할 것을 당부하는 일을 계속했다. 그동안 수 천명의 아이들을 교육시켰다. 그러한 일들을 위해 돈이 필요하자 그는 유명 잡지사의 대표 앞으로 간절한 기도가 담긴 편지를 보냈다. 그러자 일면식도 없던 대표로부터 650달러의 수표가 보내졌고 그 후로도 계속해서 2000여 달러를 보내주었다. 그의 일들이
알려지면서 TV를 비롯한 각 언론들은 그를 앞다투어 소개하기 시작했고 그는 어느 새 유명인사가 되었다. 오바마 대통령이 상원의원 시절 그를 불러 TV 쇼에 출연하며 대담을 하기도 했다.
그 후 그는 오바마 행정부가 시행한 HPRP (Homelessness Prevention and Rapid Re-Housing Program)의 디트로이트 매니져로 임명되었다. 현재 그의 직함은 개발회사의 상무이사 격이다. 아이들을 교육시킬 장소를 제공할 독지가를 찾던 중 현 사장을 만나 더 큰 꿈을 갖게 되었다. 그는 자신이 추진하는 프로젝트의 명칭을 WIN (Work In Neighborhood)이라고 밝혔다. 은행으로부터 건물을 매입하여 리모델링을 하고 고용을 창출하여 지역 주민들, 특히 청소년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한 단계씩 실천하며 다가가면 언젠가는 디트로이트가 과거의 명성을 되찾게 될 것을 확신하고 있는 듯 했다. 건물을 단장하여 상인들을 유치하고 고객들이 모일 수 있는 이벤트를 벌리면 자연스럽게 되살아날 것이라고 한다. 그는 지난 크리스마스에 장난감을 기증받아 지역 아이들 700여명을 동 건물로 불러들여 선물을 나누어주는 행사를 갖음으로써 폭스 TV에서 방송이 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그는 교육과 일자리 제공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붓는 노력을 하고 있다. 더욱 많은 이들에게 자신의 계획을 알리고 호소하기위해 디트로이트 시의원에 출마를 준비하고 있는 그는 “하나님은 내게 새로운 삶을 주면서 역할을 함께 주셨다”고 말하며 “WIN에 동참하는 사람이 늘어나게 되면 디트로이트의 부흥은 반드시 실현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GM을 필두로 빅쓰리가 회복되어가며 투자를 결정하고 일자리를 늘리는 등 경기회복의 신호와 함께 크로머 씨의 계획에 동참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날 때 올 봄은 참 따뜻할 것 같다.
